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피사로 (문단 편집) === 잉카 봉기군의 해산 === 쿠스코 포위전이 시작된 지 10개월, 아타우알파가 죽고 망코 잉카가 등극한 지 4년째인 1537년 3월경. 망코 잉카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마그로와 동맹을 거부한 이상 이들은 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며, 이로써 스페인의 병력은 2배에서 3배가 된 셈이었다. 더이상 싸워봤자 남은 것은 패배뿐이라고 판단한 망코 잉카는 군대를 해산한 뒤 스페인인들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으로 도주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선택한 지역이 잉카 동부, 즉 안티수유였다. 안티수유는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강 사이의 매우 험한 지역으로, 이 곳이라면 스페인인들이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망코 잉카는 잉카인들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으나, 이 말을 믿는 잉카인들은 별로 없었다. 망코 잉카의 아들이자 차차기 황제인 티투 쿠시(Titu Cusi)는 이때 한 족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폐하, 어찌 우리를 버릴 수가 있사옵니까? 저희는 다른 군주를 알지도 못합니다. 제발 우리를 이렇게 무력히 버리지 마십시오. 아님 적어도, 폐하와 함께 가서 행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하지만 망코 잉카는 결국 안티수유로 떠났다. 선대 황제의 [[미라]]를 비롯, 사제, 귀족, 농민, 목동 등 사실상 쿠스코의 황실이 통째로 안티수유로 탈출한 것이었다. 결국 잉카군은 순식간에 해산되었고, 잉카의 대봉기는 이렇게 해서 끝나버렸다. 이후 구심점을 잃은 제국은 차근차근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며, 망코 잉카는 안티수유에서 스페인인들에게 추적당해 사로잡힐 뻔하지만 또 한 차례 탈주에 성공했다. 더욱 깊고 으슥한 곳으로 향한 망코 잉카는 1539년, 오늘날 [[에콰도르]]에 위치한 '''[[빌카밤바]]'''(Vilcabamba)에 마지막 잉카 망명 정부를 세웠으며, 잉카제국은 이 곳에서 1572년,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체포, 처형될 때까지 30년 넘게 명맥을 유지했다. 이 잉카 정부를 기존의 잉카 제국과 구분하여 '''빌카밤바 잉카''', 혹은 '''신잉카국'''이라고 칭한다. 어쨌거나 이로써 잉카 '제국'은 사실상 멸망 혹은 해산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곤살로 피사로가 NTR했던 황후인 쿠라 오크요(Cura Ocllo)는 과거 포위전 이전에 망코 잉카와 함께 쿠스코를 탈출했었지만 안티수유에서 스페인인들에게 체포당했다. 잉카의 반란에 빡쳐 있었던 곤살로 피사로는 이 불행한 여인을 잔인하게 처형했는데, 철촉이나 돌촉에 비해서 무딘 '''[[끔살|대나무 촉으로 된 화살을 죽을 때까지 쐈다.]]''' 즉, 한 번에 죽이지 않고 고통을 주며 서서히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